고선윤 국경없는 교육가회 홍보이사·문학박사

정부는 12일부터 수도권에 새 거리두기 4단계를 시행했다. 거리두기 최고 단계이다.

지난 6월 20일, 7월 1일부터 방역이 완화된 개편안을 시행한다고 발표했다. 6인까지 모일 수 있고 식당과 카페 등 밤 12시까지 영업을 할 수 있다는 소식에 코로나의 악몽에서 드디어 벗어나는지 알았다. 그런데 확진자가 급증하자 몇 차례 수정안을 내놓았고 급기야 새 거리두기 4단계를 시행한다고 공표했다. 2020년 초에 시작된 코로나19에 대한 공포는 백신이 개발되었음에도 끝을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의 정신적?경제적 피로도가 극에 달했다. 조금만 더 참으면 마스크를 벗는 일상이 올 것이라고 버텨왔는데 와르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무기력해지는 나를 툴툴 틀고 일어나게 하는 이야기가 있어서 소개하겠다. 

몇 해 전 작은 음악회에서 바리톤 석상근을 만났다. 나는 사회를 맡았고, 쪽지에 적힌 그의 프로필을 소개했다. 이태리 티토 곱비 국제성악콩쿨에서 최고의 바리톤 특별상과 쟈코모 아라갈, 레나타 테발디, 비옷띠, 움베르토 죠르다노, 쥴리엣따 시묘나토 등 유럽의 권위 있는 국제성악콩쿨에서 7차례를 우승하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바리톤 가수.

발음도 어려운 이 상들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알지 못하는 나에게 그는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유학시절 돈이 필요하면 콩클에 나갔다”고 했다. “돈이 필요하면 노래를 멈추고 관광가이드 아르바이트 같은 것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라는 말은 내 수준의 것이었다. 그는 나가면 우승하는 그런 실력의 가수였다.

‘타고난 천재’이라고 생각하는 마음을 읽었는지, 그는 내손을 잡고 자신의 딱딱하게 굳은 횡격막 부위로 가져갔다. 그리고 횡경막을 강화하기 위한 훈련을 하고 있다고 했다. 1미터 가량의 각목의 한쪽 끝을 벽에 대고, 다른 한쪽 끝은 명치 아래와 횡경막 부위에 댄 다음 힘껏 밀어내면서 발성연습을 하는 것이다. 시꺼멓게 멍이 들기도 하는 무식한 방법이지만 좋은 소리를 내는 최고의 방법이라고 했다. 

이후 나는 그의 친구가 되었다. 석상근을 사랑하는 모임이라는 ‘석사모’의 1인으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전해 듣고 있었는데, 그러고 보니 코로나19로 참 오랫동안 소식을 접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다음과 같은 글이 올라왔다.

“(전략) 코로나19로 공연들이 줄어들면서 예술인 음악인들은 생존위기에 부딪혔습니다. 저 또한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가장으로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버틸 수가 없어서 다른 일자리를 찾아다니면서 면접을 본 끝에 물류센터에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1톤 탑차 중고를 샀고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전국으로 냉장고와 세탁기 등을 싣고 운송 설치하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일은 고되지만 이제는 적응해서 할 만합니다. 벌써 7개월째 접어드는데 긍정적으로 즐기면서 하고 있습니다. 일을 시작하면서 당분간 공연은 어렵겠다고 생각했는데, 감사하게도 물류센터 대표님이 허락을 해주셔서 공연도 병행하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코로나19가 잠잠해질 때까지 당분간 일을 계속 할 생각이고 공연활동도 열심히 할 생각입니다.”

최근 읽은 글 중 가장 힘이 넘치고 아름다운 글이었다. 코로나19로 모두가 힘든 시간을 견디고 있다. 멈춘 시간도 잃어버린 시간도 아니다. 살아야 하는 시간이고 살고 있는 시간이다. 모두가 제 자리에서 제 몫을 하고 있다.

그가 지난 3월 <월간 REVIEW>에서 김종섭 대표와 나는 이야기를 기억했다. 

“인생이 풀리는 것은 ‘남을 찾아가면서부터’ 시작됩니다. 유럽에 있을 때는 극장 오디션에도 많이 도전했습니다. 합격만큼 거부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한쪽 문이 닫히면 또 하나의 문이 열린다는 사실입니다. 다른 문이 없다고 좌절하는 사람도 있지만 다른 문이 있다고 믿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믿는 것에서 끝나면 안 됩니다. 문을 향해 달려가서 두드려야 합니다. 사람과의 만남은 언제든 노크할 수 있는 한쪽 문을 계속 만들어가는 일입니다. 결국 노래도 사람이 부르고 사람이 듣습니다. 계속 문을 두드리면 들을 귀가 있는 자가 나타나는데 우리 인생도 똑같습니다.”

그리고 오늘, 오는 7월 31일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 ‘오페라 하이라이트 콘서트’ 공연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단비와 같다. 코로나19, 우리는 결코 무너지지 않고 이렇게 살고 있다. 그는 노래를 할 것이고 나는 박수를 칠 것이다.

/고선윤 국경없는 교육가회 홍보이사·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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