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선윤 국경없는 교육가회 홍보이사·문학박사

“올해는 산타할아버지가 뭘 가져다주실까?” 덩치가 산만한 아이가 거실에서 뒹굴뒹굴하면서 툭 던지 말에 웃음을 참지 못하고 “산타할아버지도 거리두기 하시겠지”라고 했더니, “코로나19 진짜 나쁘다!”라고 진지하게 내뱉는 말에 순간 나도 진지해졌다. 벌써 크리스마스 주간인데 캐럴 한번 듣지 못한 아쉬움에 우울해지는 것 같았다.  
 
지난 19일 오전 CNN에서 방영한 특집프로 ‘새서미 스트리트 타운 홀-코로나 ABC’에 앤서니 파우치 국립 알레르기감염병 연구소장이 출연했다. 미국 코로나방역의 사령탑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코로나 대유행 상황에서 가족들과 안전하게 성탄 연휴를 보내는 법을 어린이들에게 알려주는 프로그램이었다. 새서미 스트리트의 그 유명한 캐릭터들도 함께 출연해서 어린이들과 영상으로 질문과 답변을 주고받았다.
 
일리노이주 제네바에 사는 6살 팩스턴이 “코로나가 퍼지고 있는데 산타할아버지가 오실 수 있을까요? 산타할아버지가 선물을 주러 와야 하는데 루돌프썰매를 못 타게 되는 건 아닐까요?”라고 걱정스러운 얼굴로 질문을 하자, 파우치 박사는 “사실 걱정이 되어서 직접 북극으로 출장을 가서 산타할아버지에게 코로나 백신을 놔주고 왔단다. 백신이 효과가 있어서, 산타할아버지는 굴뚝을 타고 내려와서 선물을 놓고 갈 수 있을 정도로 건강하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라고 말했다.
 
이것만인가. 지난 14일 세계보건기구(WHO)는 영상 기자회견을 가졌다. 여기서도 “산타할아버지는 나이가 많고 과체중인데 올 크리스마스에 올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을 받았고, 마리아 밴 커코브 박사는 “산타는 고령자이기 때문에 걱정이 되지만, 그는 코로나 바이러스 면역이 있어서 걱정이 없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어보았는데 산타할아버지도 할머니도 잘 지내고 계시더라”고 했을 뿐 아니라, “세계 각국의 정상들은 산타가 올 수 있도록 격리조치를 멈추고 자국 영공을 일시적으로 개방하기로 했다”는 말까지 했다. 아이들의 크리스마스 꿈을 위해서 세계의 어르신들이 이런 노력을 하고 있으니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케냐 나이로비 소재의 ‘희정 고아원’ 친구들의 크리스마스가 궁금해졌다. ‘희정 고아원’은 아흔을 바라보는 오범수 의학박사님이 30년 전에 시작한 고아원인데 부인(희정)이 세상을 떠나 홀로 남게 되면서, 지금은 박상영 국경없는 교육가회의 케냐 지부장이 원장으로 있는 고아원이다. 케냐는 기독교인이 인구의 80%나 차지하는 고로 크리스마스는 행사 중의 가장 큰 행사이다. 유럽과 마찬가지로 크리스마스를 시작으로 연초까지 긴 휴일이 이어진다. 당연 산타클로스 할아버지도 있고, 선물도 푸짐하다.
 
호주의 산타클로스는 반바지를 입고 윈드서핑을 하면서 온다는데, 케냐의 산타는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 궁금해서 바로 연락을 했다. “케냐의 산타는 검은 얼굴에 반팔인가요?”라는 말에 크게 웃으면서 “여기도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산타 그대로 그 모습입니다”란다. 하기사 아프리카도 12월은 겨울이다. 나이로비의 12월은 14~26℃의 기온인데 그들은 두꺼운 털옷을 입으니 특별할 것도 없겠다.
 
‘희정 고아원’에는 5~15세 여아가 27명 있다. 18살이 되면 여기를 떠나야 하는데, 내전과 에이즈 등으로 혼자가 된 아이들도 있지만 부모가 있음에도 입 하나 덜기 위해서 고아원으로 보내진 아이도 있다. 올해는 코로나19로 나이로비의 학교는 문을 닫았다. 4학년, 8학년, 12학년만 수업을 했어 상급 학교로 진학이 가능하고 나머지는 모두 유급이란다. 비대면 강의가 불가능하니 어쩔 수 없는 일이겠다. 고로 아이들은 줄곧 고아원에서만 시간을 보냈다.
 
그래도 참으로 다행인 것은 1만평이나 되는 넓은 부지에서 제마다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을 것이며, 한국에서 음악지도교사를 퇴임하고 마사이 동네 학교에서 사역을 하시는 분이 고아원 아이들에게 리코드를 지도하고 있다. 내년에 코로나19가 끝나면 정원 50명을 채워서 브라스 밴드를 결성할 것이라는 야무진 꿈도 가지고 있다.
 
“원장님! 크리스마스 어떻게 보내실 겁니까?”라는 질문을 기다리기라도 한 듯이 “염소 한 마리 잡아서 바비큐 할 겁니다”란다. 그리고 “할아버지 원장선생님, 사회복지사, 사감선생님, 요리사와 모두 기쁜 마음으로 선물주머니를 준비하고 있습니다”는 말에 갑자기 크리스마스 캐럴이 들리는 것 같았다.
 
“박원장님은 정말 멋집니다! 로버트 레드포드 정도는 아니지만.”
“희정 고아원을 기억하는 당신도 멋집니다! 카렌 정도는 아니지만.” 우리는 크리스마스 인사를 이렇게 짓궂게 나누면서, 참 많이 행복하다.

/고선윤 국경없는 교육가회 홍보이사·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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