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흥석 글로벌국방연구포럼 사무총장

북한이 지난 18일 평양 순안비행장에서 김정은이 참관한 가운데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7형'을 발사했다.

이번 미사일 발사에서 정치·군사적으로 주목할 분야는 2가지다. 우선 그동안 한미 당국이 '괴물'로 호칭했던 화성-17형 ICBM의 기술적 신뢰성을 증명한 점이다.

2020년 북한이 화성-17형을 처음 공개했을 때만 해도 '보여주기'식 모형물로 평가하거나 개발을 완료하는 데 상당한 기간이 필요하다는 평가가 많았다. 하지만 북한은 올해 들어 몇 차례 시험발사를 거쳐 마침내 김정은 부부와 딸이 참석한 가운데 유의미한 성과를 거뒀다.

북한 매체는 "무기체계의 신뢰성과 운용 믿음성을 검열하는 데 목적"을 두고 이번 시험발사가 진행됐으며 "최대 정점고도 6040.9㎞까지 상승하며 거리 999.2㎞를 비행해 조선 동해 공해상의 예정수역에 정확히 탄착됐다"고 보도했다. 합동참모본부도 "비행거리 약 1000㎞, 고도 약 6100㎞"라고 밝혔다. 북한의 보도 내용과 합참 평가를 종합해 보면 상당한 기술적 진전을 이룬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화성-17형 발사는 한미일 정상 공동성명을 비난한 최선희 북한 외무상 담화를 행동으로 뒷받침하는 군사력 시위이면서 미 본토에 대한 '응징억제'의 신뢰성을 제고하려는 의도다. 즉각적으로 한미동맹이 F-35를 이용한 정밀타격훈련을 실시하고 전략자산 B-1B를 한반도로 재전개해 대응한 것을 보면 당분간 한미동맹의 '확장억제'와 북한 핵·미사일의 힘겨루기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다른 중요한 관점은 김정은이 미사일 발사 현장에 딸을 동반한 대목이다. 북한 매체는 '사랑하는 자제분과 여사와 함께'라고 보도했는데, 김정은과 딸이 화성-17형 미사일을 배경으로 걸어오거나 미사일 발사 후 바라보는 장면은 상당한 정치적 함의를 갖고 있다. 우선 핵전력과 가족의 비대칭적 이미지를 만들어 대외적으로 강성 국가의 이미지를 희석하면서 체제와 가족을 보호하기 위한 억제력으로 선전했다. 또 김정은 체제의 내구성, 즉 후계 체제의 단초도 시사했다.

김정은의 후계 체제를 언급하는 건 시기상조일 수도 있다. 그러나 김정은이 비교적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한반도의 위기가 상승하는 국면에서 그 정점으로 볼 수 있는 화성-17형 발사 현장에 딸을 동반한 데는 전략적 의도가 있다고 봐야 한다.

북한 체제는 김일성을 거쳐 김정일과 김정은에게 승계된 수령 3대 세습체제다. 북한은 김일성이 경험한 항일무장투쟁을 '혁명 전통'으로 만들고, 이 '혁명 전통'을 대를 이어 계속하는 명분으로 삼아 세습의 권력 이양 방식을 선택했다. 수령 후계자는 수령을 가까이에서 보필하며 군사적 자질도 겸비해야 한다.

북한은 '백두혈통'이면서 미래 최고사령관으로서의 군사적 업적을 수령 후계자의 필요충분조건으로 내세우고 있다. 그러므로 핵은 김일성과 김정일을 거쳐 김정은에게 이어진 선대의 유산이며, 이를 계승해 발전시키는 것은 수령 후계자의 책무다.

이 때문에 북한의 수령 세습과 핵·미사일 능력의 고도화는 밀접하게 연계돼왔다. 2009년 김정은이 후계자가 되고 나서 '대포동 2호' 발사를 김정은의 업적으로 선전한 사례와 이달 18일 김정은이 화성-17형 발사 현장에 딸을 동반한 점은 함께 짚어봐야 한다.

북한은 과거 김일성과 김정일 체제에서 수령의 '유고'에 대비하지 않았다. 이런 의도적 입법 불비는 수령의 절대 권력을 보장해 세습체제를 유지하려는 전략이다. 하지만 북한은 2021년 제8차 노동당 대회에서 당 제1비서를 만들어 당 총비서의 대리인으로 명시했다.

북한은 당 제1비서가 누군지는 공개하지 않았다. 그러나 시기적으로 봤을 때 북한의 8차 당 대회는 김정은이 상당 기간 공개 활동이 없던 가운데 김여정의 '위임통치'를 우리 국정원에서 인정한 뒤 열렸다. 따라서 당 제1비서의 제도화는 김정은의 공백을 학습하면서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로 보인다. 선대의 경로 의존적 제도에서 벗어나 수령 후계체제를 명시한 점은 김정은 체제에서 변화의 시작으로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번에 공개한 '김정은의 딸이 수령 후계자일까'란 의문이 생길 수 있다. 만약 수령 후계자라면 앞으로 몇 가지 과정을 거칠 것으로 보인다. 먼저 수령 후계자의 정통성을 마련하기 위한 담론을 생산하는 것이다. 김정은의 경우 후계자 시절에 만경대 가문과 백두혈통을 계승한다는 내용의 기사가 노동신문에 실렸다.

또 김정은의 딸이 수령 후계자라면 그에 맞는 새로운 호칭을 사용할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은 후계자 시절 '당 중앙'과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로, 김정은은 '김 대장'과 '샛별 장군'으로 불렸다. 그리고 후계자의 업적을 홍보하는 작업도 진행될 전망이다. 북한은 앞서 '후계자' 김정은이 대덕산 초소에서 선행을 하고 산업시설의 CNC화를 주도했다고 선전했다.

이와 더불어 수령 후계자에겐 군사칭호, 즉 계급이 부여된다. 김정은도 2010년 인민군 대장으로 임명됐다. 수령 후계자를 위한 맞춤식 직책 신설과 제도화도 이어질 것이다. 김정일은 '국방위 부위원장', 김정은은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으로 출발했다. 북한이 '당 제1비서' 직위를 만든 걸 가볍게 볼 수 없는 대목이다.

북한은 3대 세습을 거치며 70년 동안 핵을 포기하지 않았다. 화성-17형이 '포스트 김정은' 체제의 출발을 알리는 기제인지, 아니면 국가 핵무력의 '레벨 업'인지 그 전략적 의도를 살펴보며 우리의 대응전략을 고민해봐야 한다.

/이흥석 글로벌국방연구포럼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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