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선윤 국경없는 교육가회 홍보이사·문학박사

미술대학을 갓 졸업한 어린 친구가 개인전을 가졌다. 몇 점의 그림이 팔리고, 몇 점의 그림은 서울의 모 대학교와 지방의 모 국립대학교에 대여한다고 했다. “기증이 아니고?”라는 말에 “영구대여라 ‘기증’이랑 다를 바 없지만 그래도 ‘대여’를 고집하고 싶습니다”라고 또렷하게 말했다.

첫 전시회의 작품이 이름 있는 대학교의 큰 건물에 걸린다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영광스러운 일이지만 기증이 아니라 대여이어야 하는 이유는, 자신의 ‘선의’가 일그러지는 일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했다. 예술가로서의 포스가 느껴졌다. ‘작품대여증서’에 사인을 요청하는 모습이 건방지지 않았다. 요즘 젊은 친구들은 참 야무지다.

‘베풂’ 그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베푸는 자의 순수한 뜻이 항상 그대로 전달되지는 않는다.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로 이어지기도 한다. “호의를 베푸니 호구가 되었다”는 믿기도 듣기도 싫은 말도 있지 않는가.

아프리카 작은 마을에 우물을 파주었더니, 그 지역 땅값이 올라 원래 가난했던 주민들은 모두 쫓겨났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웃음만 나왔다. 그 마을에서만 발생한 특별한 일일 수도 있지만 여하튼 이런 슬픈 일이 있었다. 판자촌이 사라지고 고급 아파트가 들어선 우리나라 달동네 개발을 떠올렸다. 그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1984년 에티오피아 대기근을 돕기 위해서 지원했던 무상원조의 쌀은 에티오피아의 쌀 자영농을 망하게 했다. 무상원조로 지급된 쌀이 시중가의 반보다도 훨씬 낮은 가격으로 불법 유통되면서 에티오피아에서 쌀농사를 짓는 자영농은 더 이상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되었고, 결국 자영농의 시스템이 망가졌다. 마이클 잭슨과 라이오넬 리치가 작사 작곡을 맡은 ‘위 아 더 월드(We are the world)’가 바로 이때 에티오피아 기근의 자금을 모우기 위해서 만든 노래이다. 

말라리아는 해마다 50만 명에 가까운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는 무서운 병이다. 말라리아에 걸리지 말라고 NGO를 통해서 지역 보건소에 무상으로 모기장이 공급되자 아프리카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아프리카의 한 지역에, 1주일에 500장의 모기장을 생산하는 소규모 업체가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할리우드의 스타 한 사람이 이 지역에 10만장의 모기장을 후원했다. 정부는 무상으로 지역 주민들에게 모기장을 제공했다. 시장에서는 더 이상 모기장을 사는 이가 없었고 상점들은 모기장을 취급하지 않았다. 모기장이 팔리자 않자 급기야 모기장 공장은 망했다. 그리고 다음 이야기는 이렇게 이어진다. 몇 년이 지나 모기장이 낡아서 찢어졌지만 새 모기장을 구할 수가 없었다. 1회성 무상지원 때문에 공장이 망하고, 이 지역에서는 더 이상 모기장을 만드는 공장이 없어졌으니 말이다. 또 다른 누군가가 기증해주기만 기다릴 수밖에 없게 되었다. 선의로 시작한 무상보급이지만, 현지의 공장을 무너뜨리고 일자리를 빼앗아 지역경제를 교란시켰다.   

모기장 이야기는 이것만이 아니다. 지역에 따라서는 모기장을 나누어주면 다음날 바로 시장에 나와 팔기도 하고, 농작물 덮개나 결혼식 옷을 만들어 입기도 한다. 빠닥빠닥한 모기장천으로 만든 면사포는 그럴싸할 것 같기도 하다.

사실 모기장은 먹거리를 위해서, 물고기를 잡는 그물로 가장 많이 쓰이고 있다. 비싼 그물이나 카누 없이 배고픔을 달랠 수 있는 먹거리를 마련할 수 있는 도구가 생겼으니 그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문제는 모기장의 그물코가 촘촘해서 손톱만한 새끼 물고기까지 닥치는 대로 잡는다는 사실이다. 물고기의 씨를 말리는 일이 된다. 미래의 먹거리를 없애는 일이다. 바로 생태계에 위협하는 일이다. 지금 당장의 배고픔은 해소할지 모르나 결국 식량부족, 가난, 그리고 생태계 기능상실을 불러오는 일로 이어지는 것이다. 

2001년 세계 최초로 비영리 벤처캐피털인 어큐먼 펀드(Acumen Fund)를 설립한 재클린 노보그라츠은 대학을 졸업하고 입사한 은행에서 저개발국을 돌며 해외 대출자산의 회계감사를 하는 국제은행가로 활동했다. 이때 세계의 많은 곳을 돌아다니면서 돈을 필요로 하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여기서 그녀가 남긴 말을 기억한다.
“그들을 돕는 일이 결코 그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때도 많았고 오히려 해가 되는 경우도 있었다. 사람들을 돕는다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는 사실을 알았다.”

/고선윤 국경없는 교육가회 홍보이사·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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