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선윤 국경없는 교육가회 홍보이사·문학박사

주한 부르키나파소 명예영사관 일을 돕고 있는 친구가 있다. 이름도 생소한 이 나라의 명예영사관인지라 선교 등으로 출국하는 사람들의 비자 업무 외에 무슨 일이 있을까 했는데, 의외의 이야기를 들었다.

“부르키나파소의 상속세법에 대해서 알고 싶습니다”는 내용의 전화를 심심치 않게 받는다는 것이다. 그러면 “혹시 돈을 보내셨나요?”라고 바로 되묻는다고 했다. 돈을 보냈다면 이건 100% 사기를 당한 것이기 때문이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영어나 불어의 메일을 받는다. “아프리카 중앙은행에 상속유산이 보관되어 있다. 반환소송을 하면 찾을 수 있다. 그 비용을 투자해 주면 상속금의 일부를 주겠다”는 내용의 글이다. 상속될 돈이 1000억 정도라고 하고 반을 나누어주겠다면서 2~3천만 원을 요구한다. 이 말에 혹해서, 팔자 한번 고칠 수 있는 큰 기회라고 입금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이야기다. 입금하기 전에 전화를 주면 다행인데, 입금하고 정신을 차리고 영사관에서 정보를 구한다면 한발 늦은 것이다. 

“설마…?”
“의외로 돈을 보낸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아.”
“어떻게 알아?”
“목소리만 들어도 알겠더라.”

영어나 불어의 메일인지라 이 글을 읽을 수 있는, 이른바 외국어에 능한 자신에게만 주어진 특별한 기회라는 오만한 착각을 이용한 사기라고 친구는 말했다.

검찰을 사칭해서 “금융사기에 연류가 되어 당신의 계좌가 사용된 것 같다. 그러니 은행 CD기에 가서 안내해 주는 대로 안전한 계좌로 이체해라”는 보이스피싱은 너무 흔해서 이제는 속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나 역시 이런 류의 전화를 몇 번은 받았고, 아들을 유괴해서 데리고 있다는 무서운 전화를 받아본 적도 있다. 최근에는 코로나19로 어려워진 소상공인들에게 전화해서 저금리로 대출 혹은 정부 지원 대출을 받을 수 있다고 안내한 다음 선입금을 요구하는 사례도 증가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쨌든 참 나쁜 사람들이다.

이런 보이스피싱이나 아프리카에 상속유산이 있다는 내용의 사기나 그게 그것이기는 하지만, 아프리카 운운하다는 사실은 우리의 ‘아프리카에 대한 무지’를 자극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국경없는 교육가회의 멤버가 되어서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를 다니기 시작한 것은 6년 전의 일이다. 매년 방학 때마다 이 나라 저 나라를 찾아다녔으니, 아프리카라고 특별히 머리에 뿔이 난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이 아니라 따뜻한 가슴을 가지고 뜨거운 눈물을 가진 사람들의 나라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나도 그 전에는 멀고 먼 미지의 나라로 내 멋대로 상상의 그림이 가득한 나라였다. 기린이 뛰어다니고, 황금왕관의 임금이 있고, 굶주린 아이들의 울음소리만 들리는 그런 그림을 그렸다.

70년대 내가 초등학생 때의 일이다. 배가 아프다고 하니 엄마는 나에게 엄마는 사탕 한 알을 주면서 “이건 소련제 약이란 못 고치는 병이 없다”고 했고, 나는 그 말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꼴깍 삼켰다. 모르는 나라, 미지의 나라에 대한 신비한 이야기는 이상한 믿음으로 이어졌던 기억이 있다.

21세기, 대한민국은 세계 어디를 향해서도 문을 활짝 열고 있다. 대학생이 되면 배낭여행을 한다면서 유럽을 휘젓고 다니고, 연휴에는 가볍게 동남아를 찾는 그런 나라가 되었다. 옛소련 러시아도 훌쩍 날아간다. 모스크바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의 기차도 서울에서 예매하고 떠난다. 그런데 아프리카만은 아직도 멀고 어려운 나라이다. 그러니 유산상속 어쩌니 하는 말에 홀딱 넘어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했다. 

더 재미난 사실은 이런 사기가 최근의 일이 아니라 10년 전에도 20전에도 비슷한 수법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2003년 서울의 모 대학 교수가 아프리카의 코트디부아르인으로부터 “아버지로부터 거액의 유산을 상속받아 아프리카 은행에 보관중인데 이 돈을 외국에 투자하니 응모하라”는 메일을 받았다. 교수는 제안서를 보냈고, 제안서를 승인하면서 “연구투자비 2천867만 달러의 송금비용으로 12만3천 달러가 필요하니 아프리카 은행으로 보내라”는 요청서를 받고 이 돈을 보냈다. “유산을 받았는데 투자하겠다”, “왕족인데 궁지에 몰렸다” 등의 메일을 받고 송금했다는 사건이 이후에도 끊이지 않았고, 지금이 이런 메일을 받고, 특별한 행운이라고 믿는 사람이 있는 듯하다.

나한테도 이런 나쁜 메일이 왔는지도 모른다. 영어도 불어도 능하지 않아서 이런 꼬부랑글씨의 메일은 깡그리 무시했으니 말이다.

/고선윤 국경없는 교육가회 홍보이사·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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