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선윤 국경없는 교육가회 홍보이사·문학박사

국경없는 교육가회는 ‘교육’을 통한 빈곤퇴치를 모토로 하는 단체이다 보니, 구성원들은 주로 교육관계자들이 많고 찾아가는 나라에서도 교육관계자들과의 만남이 많다. 10년 이상의 만남을 자랑하는 서지 킬렘(KYELEM Z.Serge Aime)과의 첫 만남도 그렇다. 김기석 대표는 눈이 반짝반짝하는 젊은 공무원에게 관심을 가졌다. 당시 부르키나파소 교육부 장관의 보좌관이었는데, 대표는 그가 서울에서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찾았다.
 
아웅산 폭탄테러로 숨진 고(故) 김재익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의 부인인 이순자 숙명여대 명예교수가 그동안 모아온 돈과 살고 있는 집 등을 포함해서 서울대에 20억을 기부하기로 약정했다. 남편을 보내고 28년이 지난 2011년의 일이다.
 
포드 재단의 지원으로 미국에서 공부한 김재익 수석은, 생전에 “앞으로 우리도 잘 살게 되면 우리보다 못한 나라의 젊은이를 위한 교육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는 말을 했었다. 이 말을 기억하는 미망인은 “과거에 선진국 원조와 장학금의 수혜자로 배운 학문과 기술로 우리가 나라를 일으킨 것처럼 이제는 우리보다 불우한 나라에 힘을 보태고 싶다. 고로 아프리카 등 제3세계의 젊은 학생과 관료들이 서울대에 와서 경제정책을 공부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취지를 담았다.
 
이에 서울대는 ‘김재익 장학금 펀더’를 만들겠다고 했고, 김재익 수석의 이름을 딴 장학기금을 만들었다. 김재익 장학기금은 개발도상국의 뜻있는 학생과 젊은 관료들이 서울대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 사용되고 있다. 등록금과 생활비 등으로 1인당 1년간 2500만원이 지급된다.
 
제1회 김재익 장학증서 전달식은 2011년 10월에 있었다. 인도네시아에서 온 도디 몰라나(당시 27세, 행정대학원)와 몽골에서 온 강톨가 반즈라크(당시 27세, 국제대학원)가 그 첫 번째 주인공들이다. 경제학을 전공한 도디 몰라나는 인도네시아 산업부 공무원이었다. 강톨가 반즈라크는 몽골과학기술대학을 졸업하고 몽골 정보통신부에서 일했다. 서울대에서 학업을 마치면 본국에 돌아가서 공무원으로 일할 예정인 이들은, 한국에서의 경험이 자국 경제의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을 확신했으며, “나중에 성공하면 역시 다른 이를 위해 베풀기 바란다”는 장학증서의 취지에 감동을 했었다. 그들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확인할 바는 없지만, 분명 공부를 마치고 귀국해서 자국의 발전을 위해서 일하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2013년 제3회 김재익 장학증서 전달식에는 부르키나파소의 서지 킬렘이 있었다. 그는 서울대학교 교육학과 대학원 글로벌교육협력학과에서 공부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1년은 장학금으로 그 다음해는 지도교수의 개인 주머니의 도움을 받고 무사히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최근 그는 부르키나파소 교육부 교육통계과장으로 승진했다. 큰 일꾼이다. 그것만인가. 나라의 성장만이 아니라 한 개인의 성장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다가간 국경없는 교육가회와의 만남은 단순히 원조국과 수혜국 사람의 만남이 아니라 깊은 정을 나누는 그런 만남으로 이어졌다. 한국에서 파견된 국경없는 교육가회의 사람들은 서지 킬렘을 ‘형’처럼 따른다. 행사가 있을 때는 두 대의 오토바이가 등장한다. 한 대는 서지 킬렘이 큰아들을 태우고, 또 한 대의 오토바이에는 서지 킬렘의 부인이 둘째 아들을 태우고 와서 온갖 일을 돕는다. 국경없는 교육가회 부르키나파소 법인화를 준비할 때는 그 일을 적극적으로 도맡아했으며 지금도 국경없는 교육가회 부르키나파소 지국의 메니징 디렉트로 여러 일을 돕고 있다.

큰 나무는 그늘도 크다. 김재익 장학금은 개발도상국의 젊은 공무원들을 키우고 있다. 고 김재익 수석이 스탠퍼드 대학에서 경제학박사학위를 따고 미국에 남지 않고 국내로 들어오겠다고 결심했을 때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미국의 수천 명 경제학자보다 한국의 열 명 안 되는 경제학자가 우리나라를 살릴 수 있다. 우리나라가 외국인 컨설턴트의 자문을 받지만 이들은 가슴으로 우리 현실의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1970년대의 이야기이니 우리가 어려웠던 그 시절의 이야기다. 여하튼 나는 동감한다. 우리가 아무리 손을 내밀고 그들을 껴안는다고 해도 자국민만큼의 역할을 할 수는 없다. 큰 나무는 그늘을 내리고 그들 스스로 자랄 수 있도록 소리 없이 돕는 일이야말로 훌륭하다. 그 시작에 김재익 장학금이 있다.

/고선윤 국경없는 교육가회 홍보이사·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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