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선윤 국경없는 교육가회 홍보이사·문학박사

2011년에 방영된 영화 <우리가 세상을 바꿀 순 없지만/but we wanna build a school in cambodia>의 원작은 하타 고타(葉田甲太)의 논픽션 서적 <우리가 세상을 바꿀 순 없지만> 이다. 2008년 자비로 출판했는데 5000부나 팔렸고, 2010년에는 쇼가쿠칸(小學館)에서 붓을 대고 다시 출판했다. ‘자원봉사는 위선자들의 일’이라고만 생각했었던 평범한 대학생이 우연히 찾아온 간절한 소원, 캄보디아 학교 건설을 위한 자원봉사를 하면서 세상과 자신을 다시 바라보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하타 고타는 1984년생이다. 고등학교 때 애니메이션 슬럼덩크를 좋아했다는 이웃나라 일본의 남자다. 그가 캄보디아에 학교를 짓겠다고 설레발친 것은 2006년의 일이다. 그러니 20대 청년이었던 시절의 옛이야기라 할 수 있을지 모르나, 이 이야기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그는 현재 NPO 아오조라(靑空)의 대표가 되었다. 2014년 캄보디아에서 신생아를 잃은 어머니를 보고 2018년 2월에 캄보디아 벽지에 보건센터를 설립했고, 2019년 3월부터는 5만 명의 생명을 지킬 수 있는 탄자니아 병원건설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그는 의사다. 도쿄 소재의 진료소에서 일을 하면서 해외지원 사업을 이어가고 있다.
“너희는 의사가 되기 위한 기술을 직접 체득해야한다. 병원을 찾는 환자들은 너희가 의사로서 완벽한 기술을 가지고 있다고 믿고 온다. 너희는 그 믿음에 보답할 의무가 있다.”
스승으로부터 이런 교육을 받은 사람이다. 낙제 점수를 받았을 때, 해부실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듣는다.
“의학 발전을 위해 시신을 기증하는 분들이 있다. 돈을 받는 것도 아니고, 너희 같은 초보가 칼을 대서 마지막에는 시신의 형태도 남지 않는다. 시신기증은 진정한 자원봉사다. 학생의 본분을 잊지 말아라. 어중간한 각오라면 의사도 자원봉사도 그만두어라.”

그는 의사도 자원봉사도 포기하지 않았다. 영화는 고타와 그의 친구들의 현황을 소개하면서 막을 내리는데 한 친구는 휴학을 하고 본격적인 해외봉사를 위해서 아프리카로 떠났다. 한 친구는 에이즈치료 전문의가 되기로 결심했다. 한 친구는 캄보디아어를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데 무엇을 하고 싶은지는 모른다. 한 친구는 고향의 병원에 취직을 했다. 그리고도 세월이 지났으니 지금은 무엇을 하고 있을지 나는 모른다. 여하튼 고타는 NPO의 대표가 되었다. “나의 일상을 원그래프에 그린다면 임상의, NPO활동, 가족과의 시간 이것밖에 없다. 나는 대단히 만족한다”는 최근의 글을 보았다.  

2019년, <우리가 세상을 바꿀 순 없지만>이 영화가 되고 그 이후 8년의 이야기를 담은 <우리들은 영웅이 되지 못했다>는 책을 출간했다. 영화가 만들어진 후, 연예인을 만나고 텔레비전과 라디오에서 인터뷰를 했다. 스스로 유명인이 된 것 같은 들뜬 마음이 지속되면서, ‘못난 의사’ ‘못난 인간’이 되었다는 솔직한 이야기부터 고뇌, 눈물, 인연, 자신의 행복, 꿈과 목표 등을 풀어나갔다. 그리고 “우리들은 영웅이 되지는 못했지만 그러나 모두가 함께라면 목전의 생명을 구할 수가 있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인세는 캄보디아 화장실 건설 등에 사용될 것이라고 했다.

무엇이 그를 여기까지 끌고 왔을까. 나는 그 답을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찾았다. 캄보디아 학교 개교식에서 고타는 “삶의 희망 감사합니다!”라고 했다. 편의점이 있고, 패스트푸드가 있고, 깨끗한 화장실, 샤워를 할 수 있는 따뜻한 물, 뭘 먹어도 배탈 날 일이 없는 도쿄. 거기에서는 결코 채울 수 없는 삶의 빈자리를 ‘나눔’이라는 커다란 기쁨으로 꽉 채우고 있기 때문이라고 감히 생각했다.

우리나라에도 국제개발협력 NGO는 무수히 많고, 캄보디아 학교짓기와 같은 프로젝트도 숱하다. 내가 하다 고타를 높이 평가하는 것은, 자원봉사를 하겠다고 종교적 믿음이나 확고한 신념을 바탕에 두고 마구 밀고나가는 그런 모습이 아니다.

어디에서나 있을 것 같은 20대 청년이 이렇게 흔들리고 저렇게 흔들리면서 결국은 ‘우리가 세상을 바꿀 순 없지만…’이라는 소극적 목소리를 내지만, 그래도 한 발 한 발 나아가면서 성장하는 모습이 살갑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이 모습은 물질이 넘쳐나는 서울에서 욕심 가득 배를 채우면서도 허기진 한 구석을 껴안고 흔들리고 흔들리는 내 모습과도 다르지 않다.

/고선윤 국경없는 교육가회 홍보이사·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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