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선윤 국경없는 교육가회 홍보이사·문학박사

“어느 대학생의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라는 자막으로 시작하는 일본영화 <우리가 세상을 바꿀 순 없지만/but we wanna build a school in cambodia>를 보았다.

재수를 하고 도쿄 소재의 의과대학에 입학한 고타는 어영부영 2학년이 되었다. 남들과 다를 바 없이 술을 마시고 연애를 하고 ‘행복’이 당연한 날들이었지만, 많은 ‘젊음’이 그러하듯 특별한 목표 없이 가슴 하나가 비어있었다. 그런 어느 날 우연히 들린 우체국에서 “당신의 150만 엔 기부로 캄보디아에 지붕이 있는 학교를 세울 수 있습니다!”는 팸플릿을 보고, 그의 평범한 일상을 바꾸어줄 일을 찾았다. 2005년 8월 13일의 일이었다. 이날을 시작으로 그의 미래는 바뀌었다. 

여기까지 이야기하면 뻔한 내용이고, 결말도 예상하는 바와 다르지 않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순수하고 착한 청년은 우여곡절 끝에 캄보디아에 학교를 짓고 해피앤드. 그렇다 그런 이야기다. 그런데 여기서 굳이 이 이 영화를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세상을 향해서 막 날갯짓을 시작하는 20대들의 꾸밈없는 소리를 나누고 싶어서이다. 그들이 방황하면서 내뱉는 대사 하나하나가 그들만의 흔들림이 아니라, 국제개발협력 NGO의 일원이라고 명함을 내밀고 다니는 나의 흔들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나 자신에 대한 물음이고, 나는 여기서 답을 찾는다. 

고타는 친구들에게 동참해달라고 손을 내밀었다. 실제는 300만 엔이 필요한데 반을 기부하면 나머지는 세계은행이 부담해준다고 말하자 “‘세계은행’이라니 진짜 사기 같다”는 대학생다운 반응을 했고, “왜 세워야 하니?”라고 되묻었다. 고타는 “세워야 하는 것이 아니라 세우고 싶다”고 답했다. 
“시급 880엔 아르바이트를 하는 네가 무슨 수로 150만원을 모을 수 있냐?”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150만 엔을 모으려면 큰 이벤트를 해야 해”라면서 롯폰기 클럽 대관료 50만 엔, 입장료 2천 엔, 고로 1000명은 모아야 한다고 적극 달려드는 친구도 있었다. 

클럽에서 이벤트를 하고, 학교에 모금함을 설치하고, 기업으로부터 프로모션 협력을 받고 캄보디아 학교를 위한 동아리를 만들어서 150만 엔을 마련해나가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다. 협력을 약속한 기업의 젊은 대표가 사업상 부정거래로 체포되자 동아리의 홈페이지도 공격은 받았다. “범죄 집단” “위선단체” “장난치지 말고 공부나 해라” “딱 봐도 나쁜 놈의 얼굴이네” 이런 댓글이 달렸다. 모금함은 파손되고 엎치데 덮친 격으로 그와 동료는 낙제점수를 받았다.

이런 가운데 동아리 멤버들의 대화 장면이 있는데, 여러분도 그 일원이 되어서 들어보기 바란다.
“돈을 모으기 위해서 할당량을 정하자. 1인당 5만 엔, 25명분의 티켓을 못 팔면 자비부담.”
“여기가 회사야? 할당량이라니. 우리의 취지와는 다르다.”
“다르니 않다. 원래 150만 엔을 모으는 게 목적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들어왔다. 이력서에 한줄 넣을까 하고. 그런 건 안 되는 거야.”
“되. 한 사람 한 사람 캄보디아를 생각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학교 짓는다고 150만 엔 빚지는 꼴이네.”
“학교는 그냥 건물일 뿐이잖아. 학교 짓고 그냥 자기 만족하는 거 아니야.”
“좀 더 현실적인 거 하자. 몸을 쓰는 일 같은 거.”
“캄보디아를 위해서 모금하는 동아리라고 해서 들어온 것인데, 아니면 빠질 거야.”
“그런데 하필 왜 캄보디아야?” 
“그래, 일본에도 어려운 사람이 있는데 왜 다른 나라를 도와?”
“학교를 짓는 것만이 아니라 문제는 그 다음이 아닐까. 교사가 부족하다면서.”
“짓는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니잖아.”
“왜? 우린 학교를 짓겠다고 모인 것이잖아.”
“조금이라도 다른 나라를 돕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닐까. 그것만으로 충부하다고 봐.”
“굳이 캄보디아가 아니라도 되잖아?”

제각기 한마디씩 하고 자리를 떠는 이도 있고 끝까지 지키는 이도 있었다. 동아리는 아수라장이 되었지만 누구의 말도 이해가 되었다. 5년 전 내가 NGO 국경없는 교육가회의 일원이 되고 가진 의문들이 바로 이런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의문에 대한 자신의 답을 찾지 못한다면 결국 이 자리를 떠날 수밖에 없다.

2006년 7월 마지막 이벤트에서 고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나는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세상은 꿈쩍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사실 사랑이니 자원봉사니 솔직히 나는 모른다. 그래도 누군가를 위해서 뭔가를 하는 기쁨은 나 자신을 위해서 뭔가를 하는 기쁨보다 더 클 때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 말이 모든 물음에 대한 고타의 답이었다.

/고선윤 국경없는 교육가회 홍보이사·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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